본인의 취향/TINKER

안성의 3월 첫번째 일요일

duda_ 2014. 3. 23. 14:52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서른 살 이후 매년 3월 첫 번째 일요일은 안성에 있는 친우 기형도의 묘지를 찾아가는 날로 정해졌다. 벌써 스물다섯 번을 다녀왔다. 그날 결혼한 걸로 치면 은혼식에 해당한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가 1980년 어느 봄날, 교정의 잔디밭 위에서 졸고 있던 나를 깨우지 않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하필 내가 자빠져 누워 있던 순금빛 햇볕이 내리쬐던 잔디밭이 국문과가 있는 문과대 앞이었다. 대학 신입생이던 전해 가을, 같은 계열에 속해 있다는 인연으로 알게 됐고 그가 잡아끄는 대로 ‘문학회’에 들어가 잘 놀고 있긴 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문학청년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문학은 너무나 순정하고 고고하되 농부의 피가 흐르는 내 삶과는 무관한 ‘예술’이었다. 여학생에게 편지를 쓸 때 빼고는 진지하게 글을 써본 적조차 없었다. 눈치 빠른 기형도는 그런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루먹은 개처럼 누워 있는 나를 굽어보며 젊은 알렉산드로스처럼 서서 물었다.

“야, 너 시 써둔 거 있냐? 나 지금 박두진 선생님한테 가는데 같이 갈래?”

“박두진이라면 <청구영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인을 말함인가? 예전에 백골이 진토가 되지 않으셨나?”

“<청구영언>이 아니라 <청록집>이지. 돌아가시다니 무슨 소릴. 지금 우리 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신데.”

“나한테는 그거나 그거나지. 하여간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네. 무협지 식으로 말하자면 무초식의 초식을 구사한다고나 할까.”

“나 지금 선생님한테 내가 이때까지 쓴 시 중에 제일 좋은 걸로 세 편 보여드리려고 왔는데 막상 혼자 가려고 하니까 무서워서 도저히 발이 안 움직인다. 같이 좀 가줘라.”

“어, 가능하지. 오징어 땅콩에 생맥주 오백을 한 조끼 사준다면.” 


은거한 고수인지 고승인지는 

나를 대할 때와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무슨 말인지 들으려고 

나도 모르게 몸이 기울어졌는데 

눈치챈 그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맞닿을 듯 좁혔다 


그러니까 기형도는 무림에서 막 세상에 나온 청년 고수가 은거한 고수들을 찾아가 기량을 겨루듯이, 젊은 선승이 고승을 찾아가 법거량을 하듯이 문학의 고수 내지 고승을 찾아간다는 것인데 혼자 가는 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림계에도 선가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가서 몇 방 물린다 한들 전혀 아프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한 방 맞았을 때 정말로 아플 만한 나의 관심 분야를 굳이 말하란다면 ‘소개팅’이었다. 어쨌든 고학생이자 장학생인 그가 내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시를 한 편 써야 했다. 시간이 없어 깔고 앉았던 대학노트 맨 뒷장에 두 줄짜리 시를 일 분 만에 썼다. 그 대학노트를 손에 쥔 내가 앞장서고 기형도가 도살장 가는 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내 뒤를 따라왔다.

문과대학 건물 일층 복도를 따라가니 검은 나무문에 ‘박두진 교수’라는 명패와 ‘재실’이라는 문구에 화살표가 맞춰진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나는 노크를 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 안쪽 어두컴컴한 곳에 시계수리공처럼 주황색 공구등을 켜놓고 앉아 있는 문학의 절대고수인지 고승인지가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눈매가 맹금류처럼 날카로웠고 눈빛 또한 웬만한 철판을 투철할 듯 형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잡아먹힐 건 내가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무슨 일인가?”

“저는 법학과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제가 어젯밤에 이십 평생 처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선생님께 한번 보여드리고 말씀을 들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그래? 그럼 이리 가져와 보게.”

나는 그에게 다가가 대학노트를 펼쳐 면전에 내밀었다. 앉아 있는 그는 생각보다는 작고 말라 보였다. 하긴 무림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높아지는 대신 그것이 잘 갈무리되어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드높은 경지에 이른다. 무림 최고수를 형용하는 출신입화, 초범입성, 노화순청, 삼화취정, 오기조원, 등봉조극 등등 어릴 적 읽었던 무협지의 용어들을 골똘히 떠올리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이게 뭔가?” “제가 쓴 시입니다.” “이게 시라고? 그럼 자네가 한번 읽어보게.”

“아 예. 제목 <봄밤>. 봄이다. 그런데 웬 달빛이야?”

“이게 시라고 생각하나?”

“그럼요. 어젯밤에 보름달이 떴거든요. 달은 원래 한가위나 대보름처럼 가을이나 겨울에 어울리는 건데 건방지게 봄에 웬 보름달이냐, 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파격이자 반역인 것입니다. 물음표로 끝난 것도 기존의 고답적인 시 형식에 대한 파괴라는 취지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해줄 말은 없네. 가보게. 서로 시간 낭비할 것 없으니.”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나왔다. 그가 기형도에게 손짓을 했다. 서로 엇갈리면서 보니 기형도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기형도는 그의 앞에서 검은 비닐가방을 열고 정성스럽게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연필로 눌러쓴 시를 세 편 꺼냈다. 은거한 고수인지 고승인지는 나를 대할 때와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는 원고지를 천천히 넘겨가면서 시를 읽고 나서는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들으려고 나도 모르게 몸이 기울어졌는데 그걸 눈치챈 그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서로 맞닿을 듯 좁혔다.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다. 어느 문파의 사제가 비밀스러운 절기를 전수하는 자리에 본의 아니게 있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상상 속 생맥주잔의 크기를 1000cc짜리로 바꾸고 넘쳐흐르는 거품으로 장식했다. 한 잔을 세 잔까지 늘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기형도의 얼굴은 술 취한 사람처럼 붉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났다. 그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체질이었음에도.

바로 그날이 내 존재의 등짝에 문학의 화인이 찍힌 날로 정해졌다. 면전에서 절정고수의 무심한 무시의 공격을 받으니 내상이 깊지 않을 수 없었다. 내상을 치료하는 데는 좋은 문학작품 같은 명약, 수련과 정양이 필요했다.

나 자신에게 자질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백지 같은 무지였다. 그러면서도 샘이 많고 귀가 얇았다. 지루함과 반복을 한시도 견뎌내지 못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맞는다고 해도 친구가 욕을 먹지 않으려면 그 ‘강남’은 정말 멋진 곳이어야 한다. 기형도가 아니었더라면 난 혼자서 꽤나 심심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진정한 친구는 죽을 때까지 친구를 외롭고 심심치 않게 하는 친구다.

해마다 3월 초순 첫 번째 일요일 점심때쯤 안성의 천주교공원묘지로 간다. 처음 가기 시작했을 때는 3월임에도 몸서리치게 추웠다. 몇 번은 큰 눈이 내려 발이 푹푹 빠졌고 서 있기에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근래에는 대체로 푸근하고 온화하다. 오래전 그의 묘지 근처에서 쓴 시가 있다. 제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묘지송>은 아니다.


배 새로 오고 까치가 울고/ 비행기 소리 나고/ 꽃이 피네 꽃이 피었네/ 거꾸로 받쳐든 우산 같으며/ 밤새 애인 그린 처녀 눈처럼 붉나니/ 어지럴싸 꽃잎은/ 바람에 지네/ 바람에 지네/ 비 내려오고 비 내려오고/ 그 봄이 사랑이다/ 사랑이었구나


소설가 성석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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