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취향/THIEF

[140602]득점에 타점까지… ‘신개념 1번타자’ 민병헌

duda_ 2014. 6. 3. 01:52

득점에 타점까지… ‘신개념 1번타자’ 민병헌

ㆍ‘자기주도학습’ 통해 완전히 다른 타자로 변신

아버지는 자신의 못다 이룬 축구 선수의 꿈을 아들을 통해 풀고 싶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축구 유니폼을 입으려 했지만, 야구가 더 좋았다. 소년은 “어린 마음에, 야구가 더 쉽고 편해 보였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시간도 많더라”고 돌아봤다. 물론 지금은 “야구 정말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년은 자라서 2006년 2차 2라운드(14순위)로 두산에 지명됐다. 당시 외야수 중에는 가장 높은 순위였다. 덕수고 동기 김문호(롯데)가 17순위로 뒤를 이었다. 김현수는 그때 지명받지 못한 채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했다. 민병헌(27)은 “신인들이 처음 모이는 날 김현수가 보이더라. 속으로 ‘현수는 잘할 텐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피드가 발군이었다. 입단 2년차였던 2007년, 시즌 도루 30개를 성공시키며 ‘두산 발야구’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타율은 2할4푼4리였다. 2010시즌까지 5시즌 동안 통산 타율 2할4푼2리, 장타율 3할2푼3리. 전형적인 ‘발빠른 선수’에 그쳤다. 민병헌은 “그땐 야구를 잘 몰랐다”고 했다.

두산 민병헌이 지난달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2회말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을 친 후 함성을 지르며 홈을 향해 달리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14시즌 민병헌은 리그에서 가장 강한 ‘1번 타자’다. 1990년대 중후반 이종범을 떠올리게 한다. 민병헌은 2일 현재 타율 0.378로 리그 3위, 장타율 0.590으로 리그 11위에 올라 있다. 44득점(3위)은 1번 타자의 당연한 덕목. 그런데 44타점으로 리그 타점 2위다. 유행가 가사처럼 ‘1번인 듯, 3번인 듯, 1번 같은’, 신개념 1번 타자다.

2010시즌 이전의 민병헌과 2014시즌의 민병헌은 완전히 다른 타자다. 비결은 ‘자기 주도 학습’이다. 족집게 강사의 주입식 교육보다 스스로 깨우친 야구가 더 강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사이 민병헌은 경찰팀에서 군 문제를 해결했다. 민병헌은 “유승안 감독님이 ‘네 마음껏 해 봐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많은 것들을 실험해 볼 수 있었다. 두산에서 뛸 때는 주전도 아니었고, 매 타석 결과를 내야 했다. 그런데 경찰에서 뛸 때는 타석마다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었다. 이 변화구 이렇게 쳐 보고, 저 변화구 저렇게 쳐 보고…”라고 말했다. 낮에 열리는 2군 경기를 마치고 밤에는 TV로 1군 경기를 봤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장 연습장에 가서 테스트를 해 봤다”고 했다. 그렇게 스스로 깨우친 야구는 돌아와 지금의 3할7푼8리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야구의 길은 스피드에 있었다. 민병헌은 “가능한 한 공을 오래 보고 쳐야겠다 싶어 일단 방망이 무게부터 줄였다”고 했다. 방망이의 스피드를 높여 ‘시간’을 벌었다. 몸쪽 공도 버렸다. “어차피 몸쪽에 4개, 5개 모두 던질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빠른 카운트에 승부한다. “같은 구종이라도 카운트 초반에 던지는 공과 2스트라이크 이후 결정구로 던지는 공의 위력은 다르다. 먼저 때리는 게 타자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쪽 코스만, 그것도 빠른 카운트에 공략하는 타자는 ‘오래 기다려 출루율을 높이는’ 1번 타자의 통념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산 송일수 감독은 지난 스프링캠프 후반, 민병헌에게 1번을 맡겼다. 민병헌은 “캠프 첫 연습경기 때 1번으로 기용됐다. 안타 1개도 못 쳤다. ‘곧 다른 타순으로 가겠지’ 생각했는데 경기 끝나고 감독님이 오시더니 ‘앞으로 민병헌이 1번이다’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송 감독은 그때 한마디를 덧붙였다. 민병헌은 “감독님이 ‘1회 첫 타석만 1번’이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1번 타자’로서 공을 오래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민병헌의 타격 타이밍을 흔들었다. 민병헌의 시즌 첫 7경기 타율은 2할2푼7리였다. 위기를 벗어난 것 또한 ‘자기 주도 학습’의 결과다. 민병헌은 “4월 초였다. 주변에 ‘이제 내 마음대로 한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굳이 공을 오래 보지 않았다. 초구에도 방망이를 냈다. 송 감독은 “노리는 구종이 들어왔을 때는 초구 때려 땅볼 아웃으로 물러나도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민병헌은 4월6일 KIA전부터 5경기에서 4할5푼(20타수 9안타)을 때리며 살아났다. 5월5일부터는 무려 22경기 연속 안타 행진 중이다. 그중 16경기가 ‘멀티 안타’ 경기다.

‘신개념 1번타자’의 목표도 남다르다. 민병헌은 “많이 치고 싶다”고 했다. 짜릿한 손맛의 흥분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꿈꾸는 가장 멋진 장면을 물었다. 민병헌은 “한국시리즈, 딱, 대구에서. 주자 잔뜩 있고. 내가 딱 쳤는데 타구가 우중간을 가르는 거다. 중견수와 좌익수가 이미 잡을 수 없는 공. 그 궤적을 보면서 1루 돌아 2루까지 뛴다. 그리고 2루에서 1루쪽 우리 팀 벤치를 딱 본다. 그럼, 형들이 막 (세리머니) 쏴주고, 내가 손 뻗어서 화답하고. 아, 짜릿하다”고 말했다. 그 꿈이 절실할 만하다. 민병헌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6타수 무안타로 부진했고 팀은 다시 한번 준우승에 그쳤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